우주피스 공화국은 가도 가도 닿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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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피스 공화국 / 하일지 지음

리투아니아에 실재하는 가상 공화국 '우주피스'가 하일지의 소설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을 초월한 피안의 상징으로 나온다. 사진은 리투아니아 우주피스 광장의 천사상.


소설가 하일지가 '우주피스 공화국'(민음사/1만1천원)이라는 신비로운 제목의 장편소설을 7년 만에 냈다. 전통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일상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끝없는 동어반복으로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보여준 '경마장 가는 길'(1990년) 이후 열 번째 장편으로 기록된다. 이번 작품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을 써왔던 지난 20년의 문학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완연한 이정표다.

하일지 7년만 새 장편소설
"삶은 끝없는 반복" 메시지
존재의 비밀 겨눈 결말 서늘


어릴 시절 먼 외국으로 떠났던 40대 남자 '할'은 주변국에 강제 점령되는 바람에 돌아올 수 없었던 고국 '우주피스'를 찾아온다. 최근 우주피스가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유골을 묻어주기 위해서다.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 국경 어딘가에 있다는 우주피스 공화국은 그런데 실체가 모호하다. 택시기사가 엉뚱하게 '호텔 우주피스'에 내려주질 않나, 사람들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지어낸 '가짜 공화국'이라고 비웃기까지 한다. 곳곳에 우주피스의 흔적이 있고, 우주피스어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도무지 그 존재를 부정하고 은폐하는 것만 같다.

할은 남편이 우주피스를 찾아 헤매다 자살했다는 아름다운 여인 요르기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또 그녀와 같은 이름을 지닌 요르기타라는 노파도 우연히 알게 된다. 놀랍게도 그 노파는 젊은 요르기타의 50년 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녀의 남편 역시 우주피스를 찾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젊은 요르기타의 집을 다시 찾지만 집은 텅 비어 있고, 절망에 빠진 주인공은 결국 권총을 꺼내든다.

신비로운 북구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소설은 내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요르기타와 늙은 요르기타, 꼭 같은 향기가 나는 수프, 언제나 본 듯한 동일한 사진과 일화들…. 섬뜩하고 끔찍한 악몽 같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 내일은 다시 어제가 되는 시간의 끝없는 순환. 영원히 맴도는 뫼비우스 띠처럼 삶은 끝없는 반복이라는 것이 소설의 메시지로 보인다.

'강 건너 저쪽'이라는 뜻의 '우주피스(Uzupis)'는 실제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예술촌으로, 매년 만우절이 되면 '가상 공화국'으로 독립한다고 한다. 소설에서 우주피스 공화국은 좇으면 좇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 뿐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곳이다. 그것은 곧 시공을 초월하는, 현실에 없는 피안의 세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을 상징한다. 미로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스스로 미로가 되는 것. 할은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존재의 비밀에 한발짝 다가서려는 소설이 몹시 서늘하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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