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에서 '희망 정화수' 긷는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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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박원순

장흥 '오래된 숲'


판도라의 상자는 아득히 먼 신화의 시대에 이미 열려져 버렸다. 악, 고통, 질병, 증오, 시기, 죽음 따위 인간이 거부하고픈 모든 재앙은 어쩔 수 없이 세상에 퍼져 사라지지 않는다. 의지할 것은 단 하나, 희망뿐. 그러나 희망은 인간 스스로 싹을 틔우고 인내로 가꿔야 비로소 축복으로 결실 맺는, 신이 인간에게 남긴 가혹한 선물이다.

'부산 희망세상' '남해 다랭이마을' '임실 치즈마을' '마산 부림시장' '김해 생명나눔재단'…

세상에는 고난을 달게 견뎌내며 희망을 일구는 일꾼들이 많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의 마을공동체 '희망세상' 일꾼들이 그렇다. 1960~70년대 부산시 곳곳에서 철거된 판잣집 주민들이 단체로 이주한 마을. 패배감과 소외감에 젖어 있던 마을 사람들이 "제대로 살아보자"며 1998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위한 봉사모임을 꾸리고, '좋은 아버지 모임'처럼 스스로 마을을 사랑하는 활동을 펼쳤다. 활동은 잘 돼, 2004년 무렵에는 반송마을을 넘어서 부산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으로 확장됐다. '희망세상'의 이름은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탄생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지난 2006년 4월부터 최근까지 근 3년 동안 '희망세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전국 방방곡곡을 훑었다. 2006년 3월 창립한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의 지향점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진리는 추상적 이론보다는 언제나 현장에 있는 법.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박원순 지음/검둥소/1만2천500원)는 그런 탐사의 결과물이다. 숱한 단체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중 가려 뽑아 20곳을 실었다.

'희망세상' 외에도, 불모의 땅을 정감 넘치는 농촌 테마 마을로 이끈 남해 다랭이마을,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늘 가난하기만 했던 마을에서 '한국 치즈의 원조 고장'이 된 임실 치즈마을, 지역 미술인들의 노력으로 재래시장에서 갤러리로 탈바꿈한 마산 부림시장,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청주 금천동 마을장학회, 소아암 환자였던 한 아이를 돕기 위해 모인 보통 사람들이 마침내 재단을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 등록까지 한 김해 생명나눔재단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지은이는 이들을 두고 "절망과 불가능 속에서 희망이라는 정화수를 길어낸 두레박 같은 존재들"이라고 부른다.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옆집 아저씨, 아줌마들인데도 소외된 지역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이들은 얍삽한 정치꾼들이나 철밥통의 관료들이 아니라 이들처럼 지역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간절한 당부이기도 하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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