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스트우드의 보수(保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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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우리 나이로 올해 80살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귀신 같은 총 솜씨를 지닌 떠돌이 총잡이로, 그리고 1970년대 '더티 하리' 시리즈에서 통제불능의 난폭한 경찰 해리 캘러핸으로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이자 마초의 아이콘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경력은 배우가 아닌 감독 활동으로 이뤄졌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에서 시작된 그의 연출작 30여편 중 다수가 현대의 고전이라 불릴만한 걸작 대열에 올라 있다.

그의 영화 만큼은 아니지만 꽤 널리 알려진 사실은 그가 오랜 공화당 지지자라는 것이다. 1986년 소도시 카멜시의 시장에 당선될 때 공화당의 지원을 얻었다. 방종한 젊은이들의 일탈에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형사 해리의 캐릭터와 뒤섞이면서 한때 자연인으로서의 이스트우드는 영화적 이미지와 개인적 정치 성향에서 모두 골수 보수파인 존 웨인의 후예로 간주되기도 했으며, 최근까지도 일각에선 '우익 파시스트'로 불렸다.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인 중 다수가 민주당 지지자임을 감안하면 이스트우드는 늙은 '꼰대' 쯤으로 여겨질 것으로 짐작될 수도 있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숀 펜 같은 민주당 지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주의자이며 열렬한 녹색당 지지자인 팀 로빈스도 이스트우드에게 더할 수 없는 존경을 표한다(두 배우는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를 함께 찍었고, 입을 모아 생애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술회했다). 스필버그는 제작자로서 위대한 전쟁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이스트우드의 연출로 태어나게 했다.

우익 파시스트, 혹은 자유의지론자

물론 예술과 정치가 별개라고 생각하면 이건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면도 있다. 그의 영화들은 자신의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지향을 일관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의 보수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보수의 범주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950년대 군복무 시절부터 공화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나는 어느 정파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리버태리언(libertarian)에 가까운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를 절충주의자나 중도파로 오인해선 안 된다. 자유의지론자로 종종 번역되는 리버태리언의 개념을 여기서 자세히 말할 계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집단주의를 거부하는 철저한 단독자, 단 한 명의 타인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지독한 개인주의자. '공동선'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그리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지킬 이는 자신 밖에 없다고 믿는 그가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게 윤리가 있다면(그는 '윤리'라는 단어도 싫어하긴 하지만), 그 것은 연민이다. 그런데 어떤 규범이나 도덕과도 무관한 그 연민이 어느 순간 시대도 국경도 뛰어넘는다.

황폐한 세상, 응시하는 시선의 힘

이스트우드 영화들은 우리를 사로잡아온 김훈의 소설들, 혹은 최근 전율로 다가온 코맥 맥카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의 소설들과 공명한다. 어떤 달콤함도 부드러움도 없이 강인하지만 스산하고 우울한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면 그것은 희망에의 약속이 아니라, 세상의 부서짐을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의 힘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보수라면 그 보수는 황폐한 세상에서 자신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는 안간힘이다. 그것은 국가도 민족도 정부도 나의 행복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자의 보수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이 지난 1월22일 개봉했고, 그의 마지막 주연·연출작 '그랜 토리노'가 3월에 개봉한다. 그 영화들을 보고 기다리며 지금 이 곳의 추한 정치적 언어들을 생각한다. 지금 내가 믿는 정치는 완고한 노인 이스트우드의 '개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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