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요산문학상 특집] '찔레꽃'으로 수상 소설가 정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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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근본적으로 비체제적인 존재'

연작소설집 '찔레꽃'(창비, 2008)으로 제25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정도상.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 첫마디가 그랬다. "의외였어요."

△인생에서 문학상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인데요. 지향한 바가 상을 탈 작품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어요. 요산 선생의 생애에 비춰 받는 상인데, 그것도 탄생 100주년에 상을 받는 것이라서 더욱 부담스러워요. 보다 밑으로, 근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등단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1987년 교도소에서 나와 경기도 구리시의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야방(밤에 공사장을 지키는 일)을 했어요. 후배가 전화가 왔어요. 전남대 오월문학상에 응모하지 않겠냐고요. '우리들의 겨울'이란 단편은 그렇게 나왔지요. 덜컥 당선되고 난 뒤에 고등학교 때 친구의 아버지가 저를 보자고 해요. 청사출판사 상무로 계시던 분인데, 남로당 전북도당 빨치산 출신이었어요. 저를 자랑스럽게 소개하시더라고요. 그날 절 다른 출판사에 데려갔어요. 그 출판사에서 '일어서는 땅'이란 소설집을 내려는데 풋풋한 신인의 작품이 없다며 소설을 한 편 쓰라고 해요. 그렇게 얼떨결에 쓴게 '십오방 이야기'예요. 공모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비공식적으로 등단한 거예요. 시대가 나에게 작가의 길을 허락했구나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소설가가 되려고 한 건가요?

△시인이 되고팠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첫사랑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이에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해주고 싶었어요. 가난한 자식이 돈 안들고 해줄 수 있는 건 시라고 생각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거죠. 그런데 군대에서 봤던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방송국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팻말들이 다 시였어요. '머리에 흉터 있음', 이런 글들이 강렬한 시로 다가온 거죠. 그 어휘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운명의 배후에 국가나 역사가 있음을 감성적으로 느꼈지요. 헤어지지 않으려면 국가와 역사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1986년 수감됐을 때 고문당하는 장면을 많이 봤어요.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개인을 해체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어요. '친구는 멀리 갔어도'가 그런 작품이죠. 처음에 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고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짧은 시론 그걸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찔레꽃'도 구조적 폭력이 '충심'이란 개인을 어떻게 해체시키느냐는 문제죠.

-'찔레꽃'은 어떻게 쓰게 됐어요?('저 하늘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을 아들 효민에게 이 소설집을 바친다'라는 책 속 작가의 말에 담긴 사연도 함께 물었다.)

△효민(장남)이는 공부도 잘하고 독서량도 많았어요. 그런데 2005년 11월 중학교 2학년 때 자살을 했어요. 유서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 다만 겨울 나무 숲 지역만은 피하고 싶다. 내 생을 리셋하련다.' 이게 다예요. 내면의 격렬함이 그 나이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행동으로 옮긴 거죠.

'꽃제비(탈북 아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초등학교 6학년이던 효민과 함께 시청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효민이가 "아빠야말로 저걸 써야 하는 사람 아니냐"면서 제목까지 '얼룩말'로 정해줬어요(어린 탈북자의 모습에서 풀을 찾아 이동하다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얼룩말을 떠올린 것 같다.) 그때부터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남북민간교류의 최전선에 있는 입장에서, 북한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 오랫동안 멈칫하다 아이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의 약속을 떠올렸지요. '얼룩말'('찔레꽃' 연작 중 한편)은 한 글자가 눈물 한 방울이에요. 저걸 안 쓰려고 무던히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썼지요. 14년6개월의 짧은 생을 살고간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서요. '찔레꽃'은 먼저 간 아이의 영혼과 함께 쓴 소설이에요.

-탈북자 문제를 쓰는 게 부담스러웠을 텐데요.

△작가는 근본적으로 비체제적인 존재라고 봅니다. 북쪽의 체제도 비판해야 하죠. 작가의 운명이 그러하니까요. '찔레꽃'을 내놓고도 북쪽 사람들에게서 욕 많이 들었어요. 탈북자를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선 불만인 거죠. 그동안 북쪽으로부터 악질 반동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남쪽에선 거꾸로 주사파란 소리를 들었지요. 남북 양쪽 다 작가의 운명이 비체제적 존재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죠.

-북한 문학인들과의 만남은 어땠나요?

△처음 북한에 갔을 땐 설?어요. 계속 대화를 하다보면 흥분이 사라지고 차분해져요. 60년 동안 다른 체제로 살아왔다는 현실이 주는 근본적인 괴리 때문이죠. 한동안 증오를 하게 되고, 그 증오가 너무 깊어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래도 꾸준히 만나니까 증오가 애정으로 바뀌었고, 그때부터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통일의 전제조건은 '통이(通異, 統二)'여야 해요. 서로 다른 것들이 소통하는 거죠. 자꾸 통일하려니까 어긋나는 것들이 상처받는 거죠. 다르다는 걸 인정한 상태에서 소통하는 게 필요해요. 다르다는 걸 인정 않고 북을 바라보니까 상처가 생기는 거예요.


휴대전화 초기 화면에 '머무르지 말기를'이라 적었다고 했다. 보다 영혼이 자유로운 작가에게 필요한 이데올로기는 유목주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소설이 탈북자의 고난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실존적 행동에 관한 것이라고도 했다. 삶의 온전성을 돌려주기는커녕 자본주의 물신화의 덫에 빠지게 만드는 기획탈북이란 '키치적 인권'에 대해서도 한참을 이야기했다. 민중문학을 한다고 계급성에만 머물면 문학의 풍부함을 놓칠 거라고도 했다. 그 많은 걸 담기엔 지면이 좁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ilbo.com

사진=박희만 기자 p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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