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우의 아름다운 인터뷰] <19> 인디고서원에서 세상을 꿈꾸는 윤한결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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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하게, 살아 있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학교도 사회도 경쟁체제로 치닫는 시대에 '순수한', '진실한',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어린 철학자 윤한결 군에게서 진정한 삶의 용기를 발견한다. 사진=김수우

삶과 꿈. 이 두 눈동자로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본다. 눈동자 속 반짝이는 반영을 읽는 눈빛 또한 반짝인다. '순수한', '진실한', 그리고 '자유로운' 이라는 세 개의 형용사. 한결 군과 마주한 내내 떠오른 단어이다. 학교도 사회도 경쟁체제로 치닫는 시대에 이 형용사들은 차라리 용기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에게 삶은 꿈꾸는 일, 꿈은 살아있는 일이었다. 꿈꾼다는 자체로 삶은 얼마나 성실한 혁명인가.

농구를 너무 좋아하고 수학을 즐거워하고 영화도 만들고 싶은 청소년 윤한결(가야고). 그는 이번에 3학년이 된다. 입시라는 거대한 경쟁에 본격 돌입하는 것. 그러나 그는 여전히 꿈꾸는 일로 바쁘다.

"그냥 살아있었으면 합니다. 충실하게 살아있고 싶습니다." 열여덟 살 어린 철학자의 고백은 징 소리처럼 긴 여운을 만들었다. 참 어렵고 참 쉬운 말. 살아있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살아있었는가. 왠지 억지로 일상의 의자에 끌어앉혔던 마음이 흰 날개를 단듯 헐렁해졌다. 그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청소년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을 폈다. 한결 군의 글 속에 담긴 문학적인 감성과 사유에 관심이 갔다.

"어릴 때 새벽마다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을 올랐어요. 어머닌 산길에 있는 한 나무를 선택해서 내 나무로 삼게 하셨죠. 매일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하면서 자연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릴 때도 꼭 그림 옆에 시를 쓰게 했죠. 그땐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소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체험이 된 것 같아요."

첫눈에도 부끄러움 많고 내성적인 모습. 주어진 것들과 새로운 생각 사이의 갈등과 의문의 층이 무겁고 힘들었다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요구하는 삶과의 충격은 모든 또래가 겪는 성장의 통증이다. 중2 때까진 주어진 대로 공부하고 시험기간이면 열심히 그냥 시험공부만 했다는 한결 군.

"중학교 3학년 어느 하루,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있었죠. 한순간 고요해지며 영화처럼 교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뭔가를 설명하는 선생님, 하나 같이 뭔가를 쓰고 있는 아이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요.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창밖에는 벚꽃이 지고 있었죠. 문득 난 왜 여기에 있나. 왜 모든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나, 하는 의심이 생기더군요."

불현듯 시작된 물음은 이내 무수한 물줄기를 만들었다. 왜? 왜? 체계적으로 정리는 안 되지만 공부하는 이유, 대학에 가는 이유, 시간이 아까운 생각, 어차피 죽음이 예비되었다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문득 열리는 그런 경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물음이 자기 발견으로 이어지면서, 세계를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 순간을 놓치면서, 가치를 의문하는 일에 서투르게 된다. 성적표와 결과중심의 현실이 그냥 아이들을 밀어붙이는 것. 한동안 그는 그렇게 밀려가는 일상에 대해 심통만 부렸다. 한때 농구가 너무 좋아 농구부가 있는 학교를 찾아 전학하고, 또 휴학하면서 농구에 전념한 적도 있다.

"순수한 공부가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공부가 싫었던 거죠. 그런데 훈련하다보니 농구도 입시를 위한 농구여서 낙담했습니다. 다시 공부로 돌아왔지만 막막하고 답답했어요. 포기하듯 일상에 매몰했는데 제겐 솔직하지 못한 날들이었죠. 어머닌 매사 전력을 다할 것을 요구했지만 전 무얼 해야할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답을 몰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인디고서원을 만났다. 어머니의 권유였다. 주말수업이었지만 거기서 만난 건 꿈꾸는 법. 독서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방식은 새로운 창이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던진 질문들이 결국 끌어낸 출발이었으리라.

"살면서 뭐가 중요한지를 배웠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 보는 것, 듣는 것, 걷는 것까지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어려웠어요. 표현하려면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하는데, 나 자신을 잘 모르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잘 몰랐죠. 그 다음엔 나를 알아도 표현하는 법이 어려웠어요. 진실한 나를 드러내는 데는 진실한 용기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인디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운좋은 행복한 아이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소통과 연대를 꿈꾼다. 소통이 안 되는 건 상대방을 향한 벽이 있기 때문. 없앨 소, 통할 통. 벽을 없앤다는 건 또 무엇인가.

수업 내용보다는 귀기울여 들어주는 수업 분위기를 통해서 소통을 배웠습니다. 또 우리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가며 진실한 자기를 드러내려고 노력했어요. 차츰 벽들이 허물어져가는 느낌에 가슴이 마구 뛰었죠. 문제는 학교였어요. 사람을 대하는 데에 마치 벽끼리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다들 외로운데도 진정한 관계는 어려웠죠."

벽은 서로 함께 허물어가는 것. 학교 친구들과의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앎보다 앎을 실천하는 게 더 어려운 현실, 또 앎을 통해 삶을 공감해낸다는 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다. 토론 중에 고2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소통의 느낌을 나누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이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8회에 걸쳐 해낸 청소년 토론회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이다. 직접 기획을 하고 제목을 달고 앎을 실천하면서 한결 군은 그 프로젝트가 진정한 세계와의 소통이었다고 확신한다. 동영상을 통해 본 세계의 현장도 그렇고, 실제로 외국친구들이 많이 온 것도 그렇고, 경제적 가난보다 정신적 빈곤을 중요하게 여긴 것도 그랬다. 무엇보다도 한 개인이라는 각자의 세계와 소통이 되었다는 것.

"그 소통과 이해가 바로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뿌듯했죠. 문제점도 많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갈 지 함께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참 중요했습니다. 철학이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하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걸 알아야 아름다움을 볼 줄 압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철학이고 인문학이 아닐까요."

삶은 존엄하다. 우리가 꿈꾸는 혁명 덕분이다. 그는 지난 겨울 가난과 폭력과 마약으로 얼룩진 아이들이 춤을 통해 자신의 치유와 가치, 존중을 발견하는 콜롬비아 '몸의 학교'를 다녀왔다. 지금 이 글이 실릴 즈음이면 한결 군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하고 있을 테다. 이타의 정신으로 과학교과서를 만들어 무료보급을 하며 진정한 교육을 꿈꾸는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처럼 비영리, 비정치적인 생명의 현장을 통해 그는 삶과 꿈의 힘을 키우고 있으리라.

얼마 전 한결 군은 '어린 물고기의 여행'이라는 시를 썼다. 달빛을 타고 달을 여행하는 어린 물고기의 이야기. 바다를 떠날 수 없는 물고기는 달님을 보며 우는데 그 눈물이 빛을 응결시킨다. 그 응결된 달빛(달물)을 타고 물고기는 달에 닿는다. 달이 차가워 실망한 물고기. 내려다보니 바다에 여전히 출렁이는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 되돌아갔으며, 되돌아가서 본 달은 예전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내용.

"인(人)이 몸이고 의식이라면 간(間)은 바로 참여이고 관계이죠. 달이 인(人)이라면 빛은 간(間)이 아닐까요. 인간이란 아름다운 달빛과 같은 거죠. 달물은 철학이라는 개념에 해당하구요."

달빛과 인간의 비유를 통해 최근 나름대로 느낀 점을 설명하며, 나라는 본질 자체가 '인(人)'이 아니고 '인간(人間)'이라는 것을 깨닫는 한결 군. 그 상상력 또한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 다름 아니리라. 요즘 마르케스에 심취해있다는 한결 군은 단편 '기적을 파는 착한 사람 블라카만' 안의 한 문장을 선명히 기억한다. '난 살아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모두 필요없었기 때문'이라는 구절. 이처럼 그는 목적이나 수단으로서의 생이 아닌, 자유롭고 순수한 생명을 꿈꾸는 중이다. 희망에 관해서도 그러했다.

"뭘 하든 살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기 위해 깨어있어야 하겠죠. 정신 안 차리면 휩쓸려버리니까요. 잠시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손이 금세 거짓말을 써버린다는 걸 '인디고잉' 기자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멋있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꿈꾸는 작은 혁명가. 경쟁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훌쩍훌쩍 넘는, 젊은 영혼들이 있다는 건 바로 지상의 건강한 미래가 아닌가. 밝고 소박한 그들의 혁명을 어른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다시 꿈꾸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순 없을까. 창을 열면 문득 노오란 산수유가 환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그러고보니 졸업과 입학이라는 봄소식이 번지는 중. 일어서면서 한결 군은 미처 못한 답인 듯 말을 덧붙였다.

"철학은 모두가 슬프고 외롭다는 것을 말해주죠. 그래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두요."

시인 soowoo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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