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요산문학상] '소외받고 고달픈 서민들의 삶이 창작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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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이동하 중앙대 교수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앞 찻집. 웬 여대생이 반색을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창가에 교수님이 앉아계신 게 보여서 인사 하려고 왔어요." 표정이 밝다.

제24회 요산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이동하 교수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인기가 많으세요.

△저도 작품에 대한 과분한 칭찬으로 이날까지 글쓰기에 힘을 얻었는데, 학생들의 습작도 꼼꼼히 읽어주면서 장점을 챙겨주려고 노력하죠. 그 때문일까요?

-요산문학상도 큰 격려가 되겠어요?

△사는 일을 핑계대고 게으름을 피웠어요. 소설 쓰는 것도 신명나지 않았고요. 소설 같은 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고, 잘 팔리고 있는 작품도 수상쩍기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10년 만에 겨우 창작집 한 권 묶어 낸 부끄러운 작가가 되고 말았어요. 그런 저에게 이 상은 참 분에 넘치는 영예입니다.

-요산 선생의 리얼리즘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는데요 ?

△문학을 거칠게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으로 나눠 저를 순수 쪽으로 몰고 가는데,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제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가 여전히 소외받고 고달프게 사는 서민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삶이거든요. 시위 현장을 쫓아다니거나 수배돼 도망가는 인물은 현실적으로 소수에 불과해요. 모순된 체제에서도 일상적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들이 대다수죠(이 대목에서 결국 사회에서 소외받고 억압받은 인물을 핍진하게 형상화한 요산의 정신과 맥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1966년의 등단작 '전쟁과 다람쥐' 이래로 줄기차게 폭력에 대해 천착하고 계시네요?

△이런 저런 이유로 폭력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선량한 소시민들의 내면은 상처 투성이일 거예요(그가 보는 세상은 '만인이 만인을 사냥감으로 삼는 야만의 벌판'이다. 그렇게 받은 서민들의 정신적 상처, 트라우마가 만약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면 끔찍한 몰골일 거라 한다. 전신에 상처 투성이 인간들이 길바닥을 가득 메우고 다니는 풍경 말이다). 특히 폭력 연작을 쓰기 시작하던 1970~80년대 상황에서 폭력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거였죠.

-카뮈를 좋아하시나 봐요. 소설 속에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타자로서의 세계는 참 차가운 존재라는 카뮈의 생각에 공감해요. 부조리함은 일상에서도 자주 맞닥뜨려요.

-일상에서 만나는 부조리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일전에 집사람과 진주유등축제엘 갔어요. 장관이더군요. 근데 아침 일찍 같은 곳을 산책했는데, 전날밤 그리도 아름답던 유등의 실체가 종이로 만든 어설픈 공작물이었던 거죠. 신념이나 열정에 빠져 있을 때 바라보는 사물은 밤에 보는 유등처럼 의미심장하지만, 그 열정에서 깨어나 보면 허망하기 이를데 없어요(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그의 생각도 드러난 말이라 여겨졌다).

-허망함에 대한 생각은 개인 경험과도 무관치 않겠지요. 중2 때 작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그 뒤론 다른 곳엔 한눈도 팔지 않으셨다고요?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데는 어릴 때 도시(대구)로 전학 와서 느꼈던 도시 체험과 빈민촌에서 맞은 어머니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도시 체험은 끔찍했어요?

-도시 체험이라뇨?

△6·25 전쟁 중에 대구 달성공원에 피난민촌이 많았어요. 겨울 아침에 달성공원을 다니다보면 계단이나 구석진 곳에서 곧잘 얼어죽은 사람을 만나요. 굶주리고 따분한 피난민의 일상을 보는 것도 충격이었고요. 자칫 얼어죽거나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생존에 대한 강박관념이 들었어요. 이런 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40대에 접어들어서야 조금씩 가시더군요.

-김동리 선생이 아끼는 제자였다고 하던데요.

△수업시간에 그러셨데요. "이동하 같은 '저런 애'들이 소설 쓴다"고. '저런 애'란 말은 소설 외엔 다른 재주가 없다는 뜻이겠죠. 매사에 서툴렀어요. 못질 하나 제대로 못했거든요.(오죽하면 '못질하기'란 소설까지 썼을까?)

-올해가 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라고 들었어요. 이번 작품집 말미에 '이젠 전업작가 기분 좀 내 보겠다' 하셨는데.

△이젠 정년이 되면 다른 색깔을 가지려고요. 작가는 크게 두 부류가 있어요. 줄기차게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혹은 죽어도 남의 이야기만 하는…. 전 전자일 거예요. 이젠 개인의 삶보다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나 민족이 걸어온 역사와 관련된 장편소설을 두세 권쯤 내고 싶어요.

-이번 작품집 앞에 배치한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 '우렁각시는 알까?', 이 두 작품도 그간의 색깔과는 많이 달라보이는데요?

△맞아요.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의 이야기는 신앙의 구원론이 인간 본성에 비춰봐서 너무나 아득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나 꿈 같다는 생각을 들어 쓴 거죠.(쌍굴에 '심심한' 거지와 '허무한' 젊은 중이 빈둥거리거나 면벽수행을 하는데, 돌연 젊은 처자가 굴에 들어오면서 생긴 해프닝을 그린 우화 같은 작품이다. 성(聖)과 속(俗)이 성(性)을 만나 도통하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우렁각시는 알까?'는 평범한 소시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행운이 벼락처럼 찾아오면서 결국 폐인이 된다는 이야긴데요?

△원래 설화의 우렁각시는 따뜻하고 소박하죠. 그런데 마치 로또 당첨됐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병든 욕망 때문에 우렁각시조차 사악하게 된 거죠.

-그런데도 글이 참 따뜻해요.

△젊은 때야 분노도 하고 그랬지만, 부부를 결속케 하는 게 서로에 대한 연민이듯, 나이가 들면서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전도가 막막해 보여도 사는 만큼 앞길이 열리게 마련입니다.

-부조리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신 것 같아요.

△지존파 이야기를 끌어다 쓴 '담배 한 대'란 작품에서 졸지에 생매장 당한 여성이 그러잖아요.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앙앙불락'이란 작품에서 낭패를 당한 트럭운전사도 '그게 세상사는 일'이라고 넘겨버리잖아요. 허무한 인생 앞에서 얼마나 태연하게, 심지어 죽음조차도 일상의 삶처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게 숙제죠. 부조리한 죽음 앞에서도 얼마나 의연할 수 있나 하는 거죠.

소설처럼 작가 이동하와의 만남은 재미있었다. 진정성과 치열함을 갖추면서도 이야기꾼의 재능도 함께 있는. 40년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이력은 마치 10차선 대로를 뚜벅뚜벅 횡단한 소설 속 트럭운전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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