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치열하게 저항한 고구려 말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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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은 변방적이고 반독립적이었다. 그들은 고구려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대체적으로는 협조적이었지만 때로는 저항적이고 고구려 멸망에 이르러 일부는 당에 항복하여 당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 대부분은 고구려 멸망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게 끝까지 당나라에 항쟁하던 세력이었다. 당과의 항쟁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쟁터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자 가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삼국사기'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당 장수가 안시성을 치려하니 북부욕살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이 아군(我軍,고구려 중앙군)과 말갈 15만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하려 하였다… 연수와 혜진은 그 무리 3만6천800명을 거느려 항복을 청하니… 당 장수가 욕살 이하 관장(官長) 3천500명을 가려서 내지(당)로 옮기고 나머지는 모두 놓아 평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나 말갈 사람 3천300명은 거두어서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말갈로 불리었던 안시성 주변 주민들이야말로 당나라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였기에 생매장의 보복을 당하였지만,고구려 중앙군 상당수는 평양으로 귀환해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만약 생매장 당한 '말갈'사람들이 고구려와 다른 종족이었다면 그토록 고구려를 지키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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