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후 한국사회] ⑤ 한일관계 변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공동개최 성공 '화해협력'전기

한국-독일간 준결승전이 열린 지난달 25일 밤 일본 도쿄의 요요기 국립 경기장에 모인 한일응원단 1만여명이 태극기와 일장기,한반도기를 흔들며 열렬한 응원을 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시작될 때의 화두는 한국의 첫 16강 진출과 함께 한일관계 변화였다. 늘 과거사 문제로 삐걱대던 두 나라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했고,양국 국민들이 상대방을 응원하게 된 것은 이번 월드컵 공동개최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양국 관계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결산하며 월드컵이 한일관계에 미친 영향과 향후 전망을 제시해 본다.

△한일 관계 새 전기=일본 내에서 공동개최의 영향,즉 '월드컵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팀의 선전은 '한국은 대단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같은 대 한국 인식변화는 '10년 걸릴 것이 한달만에 이루어졌다'는 표현과 함께 일본 내에서조차 놀라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열도 내의 우호적인 한국관은 비록 공동개최와 한국의 선전을 통해 극적으로 표출되긴 하였으나 일시적인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한국의 정치·경제적 발전이 낳은 양국간의 '대등의식' 고양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 오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안정적 민주화의 기반을 닦았으며,외환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함으로써 10년 이상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들 중 한국 만큼 '동일성'을 갖춘 나라가 없다는 인식이 지식인 사회내에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그들이 한일간 자본·노동시장을 통합하여 자유무역지대(FTA)로 만들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민의 정서에는 양국 화해로 얻어질 실리를 인정하면서도 식민통치의 피해자로서 '용서되지 않는 감정'을 아직 갖고 있다.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신사참배,유사법제 제정 추진 등 일련의 군국주의 회귀 움직임으로 한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왔고 이 때문에 이번 월드컵 대회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민 사이에는 '온도차'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동개최에 대한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은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임해 대회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선수들의 선전과 전국민적 응원 등 모든 면에서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 새로운 한일 관계의 정립에 있어 강한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 차례의 국제경기 공동개최가 구원을 일거에 해소하고 화해의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서로의 긍정적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대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큰 성과다.

일본에서 한일 민간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해인클럽의 유화준 대표는 '한국은 정보화 분야 등 첨단산업에서 일본을 앞서고 있고 월드컵을 통해 저력도 확인한 만큼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일본을 대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월드컵을 통해 확인한 국민 대통합의 위업을 계승·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자신감 속에서 우러나는 포용력으로 한일 화해의 새 시대를 주도하는 것 역시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과제다.

△양국 국민 호감 증가=2002 한일 월드컵에 대해 한국과 일본 국민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그 자체가 월드컵이 서로를 아는 계기가 됐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 국민의 상호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독일의 준결승이 열린 지난달 25일 '일본 축구의 성지'라 할 도쿄의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한국팀 응원을 위해 내줬다. 경기장에는 일본 정치인과 시민,재일교포 등 1만여명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전하며 한국팀을 응원했다.

양국 국민들 사이의 호감도 증가는 각종 언론 보도와 설문조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독일의 준결승 TV중계방송의 평균시청률은 48.3%로 일본-튀니지전의 시청률 45.5%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일본 언론들은 한국팀이 놀라운 투지와 체력으로 이탈리아,스페인을 연달아 꺾는 것을 본 일본인들이 한국팀의 결승 진출을 기원했기 때문으로 보도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최근 국내 네티즌을 상대로 월드컵 이후 한일관계에 대해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224명 중 67%와 16%가 '훨씬 좋아질 것' '조금 좋아질 것'이라고 각각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일본 네티즌을 상대로 같은 방식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70명의 응답자 중 54%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고,'조금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도 24%를 차지했다.

일본 교도통신이 월드컵 폐막 직후 이틀동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일본 국민의 82.6%는 한국과의 공동개최가 양국관계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묻는 질문에는 '매우 친근감을 느낀다' 16.3%,'어느 정도 친근감을 느낀다' 53.4%로 전체의 69.7%를 차지,지난해 11월 조사때보다 16.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용오기자·후쿠오카=김승일기자 choice@busanilbo.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