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데프 비망록 북한정권 수립 裏面史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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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 "美帝·남한 쳐부술 힘 있다"



9월 17일

▲정부 구성

-정부 각료 10명 중 9명이 남한 출신이다.

-최고인민회의 간부 21명 중 12명이 남한 출신이다.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부의장 1명도 남한 출신이다.

(註:남한에서 5·10 총선이 실시된 직후 북한에서도 정권 수립을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선거를 거쳐 최고인민회의가 구성되었고 이 최고인민회의는 9월 9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수립했다.)

10월 2일

▲철수 후에 남는 것

1 대사관 2 통상대표부 3 타스통신과 신문사 4 영화수출공사 5 조소대외문화연락협회 6 소련인 병원과 원장 아니시모프 7 정보국(정리할 것) 8 군사고문관들 9 기업과 관청의 전문가들 10 소비에트 한국인들.

(註:북한 주둔 소련군은 1948년 말까지 북한에서 철수할 계획이었다.)

10월 22일

▲남한 상황

1. 병사들이 탄 5대의 군함이 봉기자들에게 가세했다.

2. 제14연대 연대장 오동기(吳東起)가 체포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수 순천 고흥 보성 곡성 순창···하동 광양 구례.

-두 지방 도시 광주와 전주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조용히 노동당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註:남한에서는 10월 19일 밤부터 여순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남로당은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개입하기 시작했다.)

▲김책(金策)이 타스통신에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는 미제국 주의와 남한의 괴뢰 정부를 쳐부술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인민 민주주의의 영원한 기초를 마련했고 한국의 장래 운명을 해결할 것이다. 우리는 미제국 주의자들과 투쟁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조선에서 완전히 축출하기 위해 김일성을 중심으로 굳건히 단결해야 한다. 조선 인민은 소련의 문화적 경제적 원조를 희망한다.』

-실제로 그러했는지 아니면 어떠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것. 전보로 급히 알릴 것-확인된 바는 전혀 그렇지 않음.

(註:김책이 지나치게 과격한 내용을 발표한 듯해서 소련 측에서 사태 경위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 같다.)

11월 5일

▲(註:다음은 6연대 반란 사건의 내용임)

-대구시 11월 2일 12시 새로운 폭동, 경상북도(주요 도시-대구)

-30명이 기차에 앉아 있다가 들고 일어났다.

-폭동이 6연대로. 연대가 미군에 의해 포위되다.

12월 15일

▲토지문제

북한의 전체 농가수 1백9만9천8백35호. 그 중 토지 소유에 따르면 1㏊ 이하 52%, 1~1.5㏊ 19.1% 1.5~2㏊ 13.5%, 2.5~3㏊ 5.7% 3㏊ 이상 1%.

▲1946년 곡식 총수확량과 비교하면 1948년도에는 51만3천6백t, 즉, 26% 증가했다.

12월 24일

▲소비에트 군대의 철수와 관련해서 조선인들은 스탈린 동지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를 준비했다. 그 편지는 멋진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북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도 서명한 것이다.

▲조선인들은 12월 26일 전송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스탈린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건네줄 예정이다.

(註:소련군의 철수에 즈음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인민들이 서명한 스탈린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12월 25일

▲평양시, 마지막날 평양에서

-소련 군대를 위한 집회가 26일 11시에 시작됨.

-출발 26일 14시.

-집합과 분주함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합하여 밤2시쯤 다 모였다. 기차간에서 노숙할 것을 결정. 많은 선물과 짐들로 차 3대분이 모였다.

12월 26일

▲밤을 기차간에서 지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현수막과 기치를 든 채 아침에 모여들었다.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간다. 10시 45분에 집회장소로 갈 예정이다. 집회는 역 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11시 정각에 우리는 연단에 선다. 소련 지휘부 대표들과 정부 대표들이 연단에 오르자 군중들은 「만세」하고 외쳤다. 집회가 시작된다. 정부의 이름으로 환영사가 낭독되고 김책이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다. 그 후 허정숙이 소련 군대의 북한 철수와 관련해서 조선 인민의 이름으로 스탈린 동지에게 바치는 감사장을 읽기 시작한다. 조선 인민의 이름으로 된 서신을 김두봉이 읽은 후 그 편지를 소련군 지휘부 대표인 메르클로프 장군에게 전달한다. 마지막 사람이 축사를 들고 연단에 오른다. 화환 증정. 언제나 꽃들은 아이들이 증정한다. 집회는 55분 간 계속되었다. 3만명 이상이 참석했다.

▲우리는 환영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를 받으며 플랫폼을 지나간다. 열차간에 들어가서 우리는 러시아의 관습에 따라 보드카 잔으로 술을 마신다. 정확히 2시 기차가 역에서 천천히 떠나간다. 기차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전 군중들은 흩어져 돌아가지 않았다.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광장 전체가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인다. 펄럭이는 깃발과 우리를 향해 흔드는 국기가 보였다. 우리와 함께 김일성(金日成) 김두봉(金枓奉) 김책(金策) 박헌영(朴憲永) 박일우(朴一禹) 등이 기차를 타고 갔다.

(註:26일 평양에서는 소련군 환송. 군중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평양을 출발한 소련군은 12월 31일 국경을 통과하여 소련으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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