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수립 裏面史 레베데프 비망록 18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金九 "나는 단지 金日成 만나러 왔다"



4월 17일

△스티코프의 지시(오후 8시).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1, 내용에 혁명 논리와 투쟁 전략을 강조할 것.

2, 북조선 인민이 선택한 노선이 옳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것.

3, 남북 인민들이 공동으로 투쟁하도록 유도할 것.

4, 이승만 반대투쟁에 제민주 정당들이 일치단결토록 할 것.

㉠회의 참석자들이 남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계속 흘려 미군정과 남조선 당국이 혼란에 빠지도록 할 것.

㉡남조선 대표와 상의해 신문에 진짜 이름이나 가명으로 발표할 것.

㉢반동자와 미군간첩이 낄 수 있으니 자격심사위를 강화하여 진짜 이름은 꼭 알아둘 것.

4월 19일

11시 김구의 출발 정보에 따라 4월 19~20일 대표자회의 개최 여부 결정.

(김구가 출발하자 북한에서는 곧장 연석회의 일정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

김규식 측 두 대리인이 도착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동의를 받았다고 라디오로 보도할 것. 4월 18~19일 밤에 김규식 측 두 대리인 평양 도착. 이들은 『민족통일을 위해 유엔의 후원을 받는 것은 민족자주독립 실현의 조건이다』라는 연석회의에서 토의될 원칙적인 문제를 제의하고 다음과 같은 5개항의 메모를 가지고 왔다.

-어떠한 형태의 독재정치도 배격할 것.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국가를 건설할 것.

-전국적 총선거를 통해 통일중앙정부를 수립할 것.

-어떠한 외국에도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말 것.

-미?소 양군 철수는 양군 당국이 조건, 방법, 기한을 협정하여 공표할 것.

(김구와는 달리 북행을 보류하고 있던 김규식은 자신이 처음에 제시한 6개항 조건을 대폭 완화시킨 5개항 조건을 제시했다. 18일 裵成龍과 權泰陽 두 연락원을 다시 평양에 파견하여 북한 측과 이들 조건을 논의토록 했다. 위의 내용은 김규식의 5개항 조건이다. )

라디오로 방송할 것.

배성룡과 권태양 연락자들이 가지고 온 준비조건은 전적으로 해결됐다. 기술적 조건이 필요한 것은 모두 해결됐다.

(북한 측은 김규식의 5개항 조건에 대한 논의를 수락했고 방송을 통해 김규식에게 알렸다. )

회의는 시작하되 신문엔 아직 발표하지 말라. 예비회의에 31명이 참석했다.

(북한 측은 19일부터 연석회의 일정을 시작했다. 오전 11시에 예비회의를 개최했고, 본 회의는 같은 날 오후 6시에 모란봉 극장에서 개막했다. 그러나 개막식만 올렸을 뿐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는 남한에서 늦게 출발한 대표들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었다. )

(다음은 오전 11시에 시작된 연석회의 예비회의시 행해진 발언 내용으로 생각된다. )

△金科奉 개회사=김구와 김규식의 요청에 의해 회의가 연기됐다. 조선해방을 위해 피를 흘린 소련군은 북한에서 철수할 것을 제의했다. 미군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김구와 김규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 때문에 더 기다릴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기다린다는 것을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총선이 실시될 것이니 더 기다릴 수 없다. 온갖 난관을 헤치고 회의에 온 남측 대표들을 열렬히 환영한다.

△金元鳳=우리나라의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모일 수 있게 된 것도 김일성의 공로가 컸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회의에서 우리는 완전한 의견 일치를 얻어야 한다.

△白南雲=김일성이 제안한 회의 일정을 지지한다. 국제공산당 당수도 조선의 재건을 위한 우리의 회의를 지지했다. 빨리 남으로 가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예비회의에서는 연석회의 진행 절차와 방침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고, 김일성이 4원칙을 제시했다. 4원칙은 첫째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추방하고 유엔 결정을 무효로 할 것, 둘째 단선단정 반대, 셋째 소?미 양군 즉시 철퇴, 넷째 자주적 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 등 이었다. )

본 회의는 오후 6시 5분에 개회되고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김일성, 박헌영, 허현 등이 등단했다. 개회사는 김월송(82세)이 맡았고 주석단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김두봉, 허헌, 최용건, 백남운 등이 축사를 했다. 모두 소련의 역할과 업적에 대해 말했다.

(19일은 개회식만 개최됐다. )

△스티코프에게-국경을 차단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회의 참석을 이유로 국경을 넘는 사람은 더 이상 통과시키지 말아야 한다.

(북한 측은 연석회의 참석을 이용하여 북한지역에 침투하는 미국 및 남한 측 스파이를 우려한 듯 하다. )

△김일성과 김두봉, 김구 예방.

김구=나는 김일성과 단독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김일성=근본과업은 독립에 대한 위협(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 욕심이 없다. 당 대표들이 많이 왔다. 당수는 회의에 꼭 참가해야 한다. 나는 洪命熹(민주독립당 당수)와 嚴桓燮(한독당 선전부장)도 만나고 싶다.

김구=나는 주석단에 들어가지 않겠다. 그런 곳에 참석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다.

(그가 참석을 단연 거절한다면 참석하지 말라고 하고 그의 대리인이 참석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 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들 계획대로 회의를 계속하라. 나는 단지 김일성을 만나러 왔다. 단독회담에서 우리가 당면한 긴박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김규식이 제안한 전제조건을 작성하는데 참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김규식이 한 것이다.

김두봉=미군이 조선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있는가.

김구=그들은 내쫓기 전엔 안 나간다고 생각한다. 북의 헌법은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김두봉=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김구=남에서 북의 헌법에 대한 보도가 많아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김두봉=뱃속에 있는 아이를 놓고 아들이다, 딸이다 하며 왈가왈부하는 것과 같다.

(북한 측은 김구가 주석단에 참여하고 연석회의 회의 석상에 참석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김구는 남북요인회담-여기에서는 김일성과의 단독회담-개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

△우리의 결정은-공개회의는 계획대로 4월 21일에 시작한다. 47명의 지도자 호소문에는 정부수립 제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김일성과 김두봉이 제의.

(소 당국은 남한 측 대표들의 도착을 기다려 20일은 휴회할 생각이었다. )

△문제-김구와 그의 측근들이 회의를 파탄시키고 퇴장하면 어떻게 하나. 『나가라』고 하며 그들을 미국간첩으로 몰자. 그리고 회의는 계속한다. 김구와 대화를 계속한다.

(연석회의 참가에 대한 김구의 반대가 강경하자, 소 당국은 김구 측에게 연석회의 참가를 강요할 경우 김구 측이 회의를 보이콧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듯하다. 김구 측이 연석회의를 보이콧할 경우 그들은 김구를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붙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1, 총선반대-한국의 분단 및 정당 단체들이 분열 불허.

2, 소?미 주둔군 철수 후 정부수립-상부 지시대로.

회의를 계획대로 진행된다. 김구 측 사람들 중 참석할 사람은 참석해도 좋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면 이 대회는 총선을 반대하자는 것인데, 왜 퇴장하느냐고 몰아붙일 것.

(김구의 연석회의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회의를 진행시키기로 결정했음을 알 수 있다. )

도착 또는 오는 중-趙素昻(한독당 부위원장), 李克魯(건민회 대표), 엄항섭, 呂運弘(사회민주당 선전국장)등 75명이 오는 중이다. 합하면 남조선 사람은 2백 5명, 김규식은 이 중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고 있는 사람은 아침에 평양 도착 예정. 홍명희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