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수립 裏面史 레베데프 비망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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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 "金九가 와야 남북연석회의 개최"



4월 8일

▲김일성 김두봉 백남운 회담. 7일 저녁.

―백남운= 洪命熹(민주독립당 당수)에 의하면 김구와 김규식은 인민들이 대표자 회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니 남북 조선인들은 단결해야 하며 국가기관 창설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조선에선 서북청년들이 주택가를 돌며 남한 총선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고 있다. 찬성하면 도장을 찍도록 하고 도장을 안 찍으면 좌익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고 협박하고 있다. 인민의 60%가 도장을 찍었다. 인민들은 연석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구와 김규식은 늦더라도 꼭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며칠간만 기다리고 자신들이 없으면 회의를 진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홍명희에게도 이 같은 당부를 했다고 한다. 김구가 오지 않으면 회의가 연기되는가.

―김일성=김구가 올 때까지 대표자회의는 연기한다. 김구가 꼭 와야 하고 우리는 그를 기다릴 것이다. 남북 공동기관을 구성하자면 그를 기다려야 한다.

―백남운=그들이 국경을 넘어 오긴 어렵지 않다. 김구에게 북조선 공장과 민주건설 성과를 보여주면 그는 고무될 것이며 그에게 투쟁의욕을 줄 것이다.

―김일성=우리는 헌법을 채택하지만 내각은 구성하지 않을 것이다.

―김두봉=김구와 김규식에게 직위를 주고 헌법채택 이후 범민족정부를 구성할 계획이다.

▲김일성에게.

―회의 참석자들이 돈이 없다. 이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킬 수 없다.

―김구에게 언론 활동의 자유를 주라.

―토의시간을 제한하지 말되 토의가 끝나면 실천사항을 결의토록 할 것.

―토론에서 한쪽의 독단이 없도록 할 것.

―김구와 회담을 꼭 관철시킬 것.

4월7일 2명의 연락원을 보냈다고 서울방송이 전했다. 이들은 자동차로 38선을 넘었다. 10일 동안 북조선에서 체류할 것이라며 회의를 4월 24일로 연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김일성·김두봉에게」라는 제목의 김구 편지를 전달했다. 내용은 「3월 25일자 서한을 우리는 감사히 받았다. 우리 두 동무(김구 측 안경근, 김규식 측 권태양)를 연락원으로 보내니 이들에게 지시를 주기 바란다」라고 씌어 있다.

이들은 김일성과 김두봉을 만나 △4월 24일로 회의를 연기하되 이를 북조선 방송으로 통보할 것 △초청한 인사 외에도 선거를 반대한 인사들을 더 초청할 것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백지에서 출발하자. 서로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남조선에서 기자 2~3명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김구에게 물어봐야겠다. 그가 바라는 자유는 어떤 것인지. 남조선에서 총선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사실인지. 누가 남조선 선거를 막을 수 있는지.

김구는 남조선 인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가.

김구와 김규식의 서한 내용을 스티코프에게 보낼 것.

4월 9일

▲소련군 극동사령관 비류조프 암호전문.

―앞으로 조선에 대한 모든 지시는 나를 거쳐야 한다고 스티코프 동지에게 전하라. 그는 나의 정치부관이지 소련대표가 아니다.

(스티코프와 비류조프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문제는 스티코프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4월 12일

▲스티코프 전문.

―김일성에게 아래와 같은 신문 보도문을 전달하라. 북조선 정당과 사회단체 요청에 의하여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부는 북조선 민주 정당 및 사회단체 초청으로 평양에서 개최되는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북하는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입북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성명했다.

▲4월 12일 현재 평양도착.

△白南雲(근로인민당 부위원장)과 비서 2명 △羅承圭(민중동맹 조직부장) △洪南杓(남로당 중앙위원) △許成澤(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의장) 등 2명 민중구락부 2명 △전국 농민총연맹 1명.

▲스티코프(오전 6시)와 툰킨(오전 4시)의 지시.

―김일성은 김구의 요청에 의해 회의가 연기됐다고 보도하고 대표단이 도착하면 순차적으로 맞이할 것.

회의에서 조선인민에 보내는 호소문과 소·미 정부에 보내는 호소문 등 두 개의 간단한 호소문을 채택할 것.

(김구의 연석회의 개최 연기 제안이 소련측에 의해 받아 들여졌다.)

4월 14일

스티코프와 협의. 오후7시.

―입북한 정당 대표들의 명단을 보도할 것인지=남한 사람들과 협의하라.

―그들의 사진은 회의에서 논의하라.

―신문에 공개 비공개 대상자는=해당자들이 결정하되 나의 재가를 받을 것.

―김원봉의 공개 또는 비공개 여부=본인과 상의, 신중히 결정하고 나의 재가를 받을 것.

4월 15일

▲김일성에게.

―인민회의 4월말 소집할 것.

―인공기와 인민군기를 제작하되 붉은 색과 청색, 흰색과 검은색(선과 악 상징)을 배합토록 할 것.

(계속 연기됐던 헌법 비준을 위한 인민회의가 최종적으로 4월말에 개최토록 결정됐다.)

4월 16일미군정의 하지에게서 전기요금 협상에 관한 서한이 오지 않으면 김일성에게 4월 20일부터 남한에 대한 송전을 중단토록 지시.

4월 17일

서울방송에 의하면 김구가 4월 18일 출발한다고 성명했다.

▲김구의 기자회견문.

나는 이북에 가고 싶다. 일부 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북조선에 잘못을 빌러 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결코 그러기 위해 가는 게 아니다. 나는 긴 편지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편지는 외국인들의 손에 들어갈 수가 있다. 나는 한 핏줄인 동포들과 우리 말로 이야기하러 간다. 나의 방북은 내 신변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나 나는 조선인민을 위해 평생을 싸워왔기에 두렵지 않다. 5월 10일 내로 나를 암살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 4월 18일에 우리는 떠난다. 김규식은 1주 늦게 출발할 것이다.

(김구는 북행을 앞두고 4월 15일 남북협상에 임하는 결의를 표명했는데 위의 내용은 바로 김구의 4월 15일자 발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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