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수립 裏面史 레베데프 비망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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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임시 헌법 제정 北韓 독자 정권 추진



11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 결의. 金策과 대화.

-이 문제와 관련한 정치위원회 작업 계획.

-신문에 실린 한국 문제 결의에 관한 정보를 연구할 것.

-내일 인민위원회를 소집하고 한국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볼 것.

-한국 문제에 대한 미국 제안에 대한 반대를 신문에 게재할 것.

-지도부 인사들이 직접 나서지 말 것.

11월 11일

▲김책(대화). 인민위원회 회의에 대하여.

-대다수 위원들이 신문을 읽지 않았다. 북조선 통신사 사장이 (유엔)결의 및 토의 내용에 대해 통보했다. 회의에 17명이 참가했다. 사법국과 교통국(학습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책임자들이다. 연설자 모두가 소련 대표단이 문제를 올바르게 제기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왜 이 결정에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선전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회의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리는 이 결정이 부당한 결정이며 우리는 이 결정에 반대한다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유엔총회 정치 위원회는 11월 5일 남북한 총선거 및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설치안을 11월 5일 가결했다. 따라서 이 안은 유엔총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蘇 당국은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고자 북조선 인민 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던 듯 하다. )

11월 13일

B의 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 상반기에 미국 첩보원 61명을 체포했다. 6월부터 9월까지 94명의 외국 스파이를 체포했다.

한국의 반동세력이 활동을 강화했다. 한국 경찰이 2천 2백 30명을 체포했다.

11월 18일

북조선 인민회의 제3차 정기회의가 있었다.

金科奉이 조선 임시 헌법의 필요성과 헌법 준비 위원회 조직에 관해 보고했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의사일정은 2일간이다.

(11월 18~19일 양일간에 걸쳐 개최된 북조선 인민회의 제3차 회의는 북조선 임시 헌법을 제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결정은 이 헌법에 따른 북한 독자 정권수립 작업이 곧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

11월 19일

김일성이 비류조프(소련군 극동사령관)와 비행기로 돌아왔다. 김일성 에게는 수술자국이 있다.

(아마 김일성은 11월 3일 출발하여 수술을 받고 이날 돌아온 듯 하다. 어디에서 수술 받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

▲당의 사회성분(1947년 9월 1일, %)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 1946년 7월부터

-노동조합=17개 산업별 노동조합, 37만 6천명

-농업동맹=1946년 1월부터 2백 55만 1천명

-여성동맹=1946년 11월부터 1백 11만 4천명

-朝鮮문화교류협회=54만명

▲비류조프 지시

1, 북한이 다른 나라와 무역하는 것을 반대하지 말 것-특히 중국과.

2, 제지 공업에 관한 암호전문을 비류조프의 서명을 받아 미코얀(소련 장관)에게 보낼 것.

3, 우라늄에 대하여-베리야(소련 부수상)에게 암호전문을.

4, 문관들이 왜 식량배급을 받는가.

5, 남과 북의 교역을 막지 말라.

6, 인민위원회와 카르쿠렌코 그룹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것.

7, 인민위원회로부터 사령관과 장교들에게 줄 식량을 배급받을 것.

8, 김일성에게 한국군내 고문관들의 생계 문제를 제의할 것.

11월 28일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화폐정책에 대한 준비가 이뤄졌다. 사전에 모든 계획이 세워졌다. 12월 1일 화폐교환에 관해 인민위원회 회의가 소집될 것이다. 12월 6일부터 화폐교환 업무가 개시될 것이다.

12월 1일

저녁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저녁에 스티코프와 함께 민전 호소문과 화폐교환에 대한 사설을 편집, 교정했다.

12월 5일

화폐개혁에 대해 공표했다. 12월 5일까지 주민들은 아무 것도 몰랐고 생활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상점들이 문을 열었고 상업이 이루어졌고 거래가 성립됐다. 그런데 갑자기 신문에 화폐개혁에 관한 인민위원회 결정이 발표된 것이다. 갑자기 국영상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문을 닫았다.

(북한은 해방 후 구조선은행권과 소련군이 발행한 군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월 5일을 기해 화폐개혁을 실시, 사용을 금지하고 신화폐를 사용토록 했다. )

12월 3일에는 황해 제철소 제3용광로 시동에 참석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점화된 용광로이다. 모두가 흥분했다. 첫 번째 용해. 얼마나 흥분된 순간이며 얼마나 커다란 자랑이며 미래에 대한 확신인가. 성대한 집회가 있었고 거기에서 관리자 기술자 노동자들이 표창을 받았다. 상금을 수여 받은 이들은 위원회 간부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서서 집회 참가자들에게 인사한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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