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권 수립 裏面史 레베데프 비망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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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政수립 문제로 金日成과 비밀면담



5월 27일

5시에 미군 7사단 31연대 열병식에 참석했다. 부르스 소장(미 제7사단장)이 자신의 숙소에서 칵테일 파티를 개최하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에게는 키가 크고 명랑하고 상냥한 아내와 결혼 적령기의 딸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장교 숙소를 건설했고 거기에서 생활했지만 우리(소련측)장교들은 한국인들과 기거했다. 칵테일 파티에는 그와 2명의 장군이 함께 참석했다. 모두 부부동반이었다. 미국인들과 담소했다. 미국에서 왔을 때부터 기대는 않았지만 따분하다고 했다. 모두 한국과 한국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인 가정부들이 일을 잘 못한다고 경멸적으로 말했다.

5월 29일

중앙 및 지방 정부기관 조직에 관한 미국측 안을 받았다. 대충 살펴보니 한국인들은 다만 「예스」 「노」로만 대답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같은 제안은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며 이 점을 웨커링 장군에게 이야기할 생각이라는 나의 견해를 체렌치 포미치(스티코프)에게 말했다. 스티코프는 나의 제안을 승인했다.

11시 위원회에서 나는 제안서를 보았다고 브라운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제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의 제안은 질의서에 대한 한국인들의 주도권을 축소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지난해에 승인된 이전 질의서를 변경 없이 그대로 놔두자고 제안했다. 웨커링이 얼떨결에 찬성했다. 단일안이 마련됐고 질의서도 채택됐다. (이 질의서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임시정부 수립에 대해 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협의 시 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이날 채택된 질의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인민의 권리 △수립될 임시정부의 일반상태 및 성격 △행정 및 입법기능을 수립할 중앙정부의 기초 △지방기구 △사법기구 △임시헌장의 변경 및 수정방법 등. 이 내용은 이후 본회의 논의를 거쳐 6월11일 미소공위 제11호 공동성명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의 구성 및 원칙에 관한 자문서」로 발표됐다.)

날짜 미상

(다음 내용은 6월초 이후에서 6월12일 사이 어느 날인 듯함.)

위원회 작업 진행에 관해서 평양의 김일성과 우리측에게 간단히 정보를 제공할 것.

-미국인들이 작업을 지연시키려는 시도를 하곤 했다. 대부분 문제에 있어서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에 작업이 지연됐다.

-그들은 정부에 좌익 인사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온갖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그 방법들은 어떤 것들인가?

3개 정파=좌파 우파 중도파-김규식 여운형.

미국인들은 우파와 중도파 인사들과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좌파는 자신들의 지분으로 50%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남조선)과도정부에 대해.

그들은 슬그머니 진행시켜 버렸으며 이를 기정 사실화시키려 하고 있다. 신문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상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소공위 상황을 평양에 알려주기 위해 메모한 내용인듯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소련측은 미국측이 좌파 인사들을 경원시하고 우파 및 중도파 인사들로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편 미군정은 1947년 5월17일에 발표된 법령 141호를 통하여 미군정의 조선인기구의 명칭을 남조선과도정부라 칭하기로 했다.)

-만약 미국인들이 남조선과 도정부와 인민위원회간에 회담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김(김일성인 듯함)은 이 회담에 좌익 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박헌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상은 남조선과도정부와 북조선인민위원회 사이 직접 회담을 미국측이 제안했을 때를 예상한 것이다.)

6월 12일

(레베데프는 11호 성명에 대한 준비와 30일 평양에서 개최될 합동회의 준비를 위해 11일께 평양으로 간 듯하다. 다음은 평양에서 준비 상황에 관한 내용들이다.)

스티코프 동지에 대한 보고. (당시 스티코프는 서울에 있었다.)

1, (11일인 듯) 20시50분에 순조롭게 도착하였다.

2, (11일인 듯)저녁에 김일성과 대화를 가졌다.

오늘 아침에는 코르트코프(치스차코프에 뒤이어 부임한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그로모프, 그리고 이그나치예프에게 통보하였다. 13시에 두 번째로 김일성과 3시간에 걸친 비밀면담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들이 논의됐다. 19시에 다른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에게 선언을 공식 발표했다. 37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6월14일

회의가 이루어졌다. (이날 개최됐던 「북조선민전 산하 각 정당 사회단체 열성자 대회」를 말함.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북한측 전반적 입장을 밝혔다.)

-김일성이 1시간 이상 연설했다.

-농민에 대한 토론-강진건

-17개 직업동맹으로부터 연설이 있었다. 모두 잘했다. 천도교 역시 잘했다.

-입법부가 구성될 때까지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소비에트대표단의 완벽한 승리는 어떻게 평가 받고 있는가?

-모두가 흥미를 갖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조선에 뒤떨어지지 말 것.

▲보고

1, 어제 낮에 김일성 연설문을 검열했음.

2, 저녁에 위원회 회의 장소를 둘러보았음.

3, 인민회의 가구는 다 준비됨.

4, 회의장소(과거 법정)를 수리하고 나면 6월 25일에는 준비가 완료됨.

5, 저녁에 영화극장을 둘러 보았다. (평양 합동회의 준비 상황에 대한 이상 내용은 서울에 있는 스티코프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인 듯하다.)

지금 우리 임무는 당과 북한 사회단체들을 공동위원회 협의에 대비하여 준비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소련)에 이익이 되는 인사들을(임시)정부로 보낼 것.

-자문서에 대한 답신안을 준비시킬 것.

-무엇이 이루어졌는가?

-김일성이 자세히 2번 교시했다.

-김일성의 보고 「임시정부수립에 관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열성자대회에서 행한 김일성의 연설 제목임)로 며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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