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데프 비망록」 발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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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권 수립 裏面史 밝힐 단서"



한반도 현대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해방직후 분단사 중 북한수립 과정은 그동안 자료부족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본사는 이같은 역사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미래 한반도 통일을 대비한 과거연구의 일환으로 宋珖鎬모스크바 특파원이 입수한 해방직후 舊蘇聯 북한주둔군 사령관 레베데프의 비공개 비망록을 새해부터 연재하기에 앞서 이 비망록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관련학자를 통해 알아본다.

우리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출발점이 됐던 해방 직후 분단과정 중 남한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군정 자료 등 여러 자료들이 상당정도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당시 북한에 대한 연구는 자료상 한계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편이다. 그렇지만 최근 사회주의권의 변화와 더불어 당시 북한 고위층의 증언이라든지 舊소련측 자료들이 점차 입수되면서 당시 蘇군정하에서 이루어졌던 북한정권 수립 내막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발굴된 「레베데프 비망록」은 당시 북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희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레베데프는 해방과 더불어 북한에 진주했던 舊소련군 최고위 장성으로 蘇군정 정치사령관과 민정사령관을 역임했던 북한정권 창출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비망록은 분단 막후에서 숨가쁘게 전개됐던 북한정권 수립의 비밀들을 상당정도 밝혀줄 것이라고 예상된다.

1947년 제2차 美蘇공위가 전개되기 전까지 蘇군정은 토지개혁 등 일련의 사회개혁 정책을 통하여 북한의 사회주의적 기반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미소공위를 통해 남북한 좌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임시정부 수립을 모색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1947년 후반 이후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통일정부 수립의 가능성이 무산되면서 남북한에서는 각각 분단정권 수립이 본격 모색되기 시작한다. 「레베데프 비망록」은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위가 개막되었을 때로부터 1948년 12월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할 때까지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망록은 제2차 미소공위가 전개되고 결렬됐던 상황, 결렬 이후 북한정권이 본격 등장했던 상황 등을 蘇군정 입장에서 소상히 기록했다.

「레베데프 비망록」과 관련하여 우선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제2차 미소공위 개막에 즈음하여 소련측이 지니고 있던 임시정부 수립구상이다. 그에 따르면 첫째로 소군정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위 협의대상 정당 사회단체 대표 비율에 있어 남과 북의 동등한 지분과 남한 대표 중 50%의 좌파지분을 원했음이 드러났다.

둘째로 소련측은 임시정부 전체 각료직 중 총리 부총리 국방장관 등 주요 각료직을 포함하여 3분의2 정도를 남북한 좌파에게 할당하도록 요구할 생각이었음에도 이 비망록은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레베데프 비망록」은 제2차 미소공위 결렬 이후 북한에서 추진됐던 북한정권수립 과정에 대해서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다수 제공해주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소군정과 북한지도부 사이의 긴밀한 관계속에서 북한정권 수립이 모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정권수립 기본지침이 모스크바-스티코프-레베데프-金日成 등으로 이어지는 체계적 지시 속에서 마련됐고 그 지침에 바탕하여 소군정은 북한정권 수립의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고 있었다는 점이 비망록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망록은 소군정 개입아래 추진됐던 북한정권 수립과정이 기존에 알려져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비망록은 북한정권 수립추진과 관련하여 「전조선인민위원회대회」 소집이 고려됐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남한측 대표 3백여명을 월북시켜 1948년 3월 중순께 「전조선인민위원회대회」를 소집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회를 통해 사실상 남북한 전체의 인민회의, 즉 국회를 구성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남한에서 金九 金奎植 등 남북 협상세력이 강화되고 이들이 남북협상을 제의함으로써 「전조선인민위원회대회」 소집보다는 「남북연석회의」를 추진해야 할 상황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3월 이후 비망록이 주로 보여주는 것은 소군정과 북한지도부의 치밀한 준비하에 추진됐던 남북연석회의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들은 金九 金奎植을 北으로 불러 올렸을 때 야기될 수 있는 제반 문제와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金九에게 일정한 지위를 주어 그를 북한에 머물게 할 수 있으리란 북의 판단, 미 군정이 金奎植을 남한의 대통령으로 내세울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렇기 때문에 金奎植을 북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던 의도, 북에 올라온 金九 및 金奎植이 그들의 계획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경우에 대한 대책 등이 그것이다. 또 남북협상세력의 북행 과정에 있어서 白南雲의 역할, 남북협상을 통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치밀하게 준비했던 제반 조치 등 남북협상과 관련된 사실들을 비망록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밖에도 「레베데프 비망록」은 인민군 창설과 관련된 내용, 우라늄광에 대한 소련의 관심, 천도교에 대한 감시, 연안파 金枓奉에 대한 불신, 소련군의 철수 상황 등 이제까지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담고 있다.

이처럼 레베데프 비망록은 지금까지 미진했던 이 시기 역사에 대한 진일보한 이해를 가능케 해 줄 뿐만 아니라 북한정권 수립에 대한 보다 새로운 해석도 가능케 해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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