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나남 우라늄 채굴 노려 蘇, 6·25 北남침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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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九 협상제의 역이용



한국전쟁은 소련의 核실험 성공과 북한에서의 우라늄생산이 중대한 요인 중 하나였으며 金日成의 남침야욕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또한 金日成의 핵에 대한 맹신은 소련군의 평양진주와 더불어 시작돼 오늘의 복잡한 북핵 문제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본사 모스크바 宋珖鎬특파원이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8월 모스크바 현지에서 발굴한 前소련 제25 군사회의(정치사령부) 사령관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 소장의 비망록에서 처음으로 밝혀져 한국 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비망록은 지난 1974년 북한의 淸津과 羅南 부근 광산에서의 우라늄 채굴소식을 당시 소련의 제2인자로 악명 높았던 비밀경찰 NKVD(KGB의 전신) 및 핵개발 책임자 라프렌티 베리아에게 암호전문으로 보내는 흥분된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비망록은 또 蘇군정이 제2차 美蘇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처음에는 남북한의 좌파들이 중심이 된 「전조선인민위원회대회」를 통해 북한정권 수립을 꾀했던 것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金九 및 金奎植이 남북협상을 제의해오자 「전조선인민위원회대회」를 취소하고 「전조선정당사회단체련석회의」(남북협상)를 개최, 이를 통해 곧 수립될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사는 새해부터 레베레프 소장의 비망록을 당시의 생생한 기록사진과 함께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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