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Space]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업영화관에서 본다는 것의 어려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 좋은 의미 있고 예술적인 영화들이 이렇게 낙후한 시설에서 상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짜증나신다면 부디 서울아트시네마의 후원회원이 되어 주시라. 그렇게 영화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마주치게 한다면 2012년 봄은 너무 포근한 봄이 될 것만 같다…다큐멘터리를 개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6월 개봉을 앞두고 <두 개의 문>의 극장 배급을 위한 배급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후원을 하시면 2012년 가장 치열하게 세상과 고민하고 비범하게 그것을 영화로 만든 <두 개의 문>의 엔드 크레디트에 당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두 개의 문>(2011│HD│Documentary│99min / 연출│김일란 Kim Il-rhan 홍지유 Hong Ji-you)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 실린 변영주 감독의 글 가운데 일부다. 영화인도 아닌데 왜 남일 같지 않을까? 변 감독의 글을 읽으면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이 새삼 와닿았다고 할까. 

그렇다. 변 감독은 최근 개봉된 ’상업’영화 <화차>라는 작품을 통해 수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지만 실은 독립영화 감독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 중 한 명이다. 1989년부터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고 1995년 극장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이력을 기억한다면 그의 독립영화에 대한 ’애증’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도 어렵사리 만들어진 독립영화를 정식 개봉관에서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서 보긴 했지만 그 과정이 만만찮았다. 단순히 ’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 2011 한국 | 다큐멘터리 | 개봉 2012.03.08 | 15세이상관람가 | 95분 | 감독 정재은 | 출연 정기용, 승효상)는 CGV의 예술영화전용관인 꼴라쥬관이라도 있었기에 관람이 가능했다. 하지만 꼴라쥬관이 설치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부산의 경우 CGV서면이 거의 유일하다. 상영 시간대가 많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기에 상영 시간을 찾아보고 그리고 영화관을 찾아간다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영화는 참 좋았다.    ▶[느낌]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말하던 고 정기용 건축가. 정작 그에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이, 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목욕탕을 집어넣고, 시공 자리에 서 있던 나무를 보호하려고 그 나무를 감싼 건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또 관객석이 햇볕에 노출되는 걸 염려해 지붕을 올리고 주변의 등나무와 어우러진 운동장을 설계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영화를 통해서지만 일련의 작업들을 지켜보면서 그의 건축세계 중심은 사람과 자연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영화적으로는 썩 매끄러운 촬영과 편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의 삶 자체는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에서도 너무나 의연한 게 삶만큼이나 고귀한 죽음의 이면을 새삼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이가 더 들어간다는 건,정말이지 그의 말대로 철학자가 되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잊을 수가 없다. 

<말하는 건축가> 

<달팽이의 별>(Planet of Snail, 2012 한국 | 로맨스/멜로, 다큐멘터리 | 개봉 2012.03.22 | 전체관람가 | 85분 | 감독 이승준 | 출연 조영찬, 김순호 |산울림의 김창완 해설 버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의외였던 건, CGV센텀시티 일반 개봉관에서 상영하긴 했는데 아침 첫 상영, 즉 조조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상영 며칠 만에 막을 내렸다. 일요일 아침 조조라도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현재 이 영화는 소극장을 개조한 예술영화관인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루 한 차례 관객을 맞고 있다. 언제까지 관객을 맞을 수 있을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느낌] 참으로 예쁜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동정도 연민도 아닌 당당함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영찬 씨가 들려준 독백처럼, 어쩌면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참된 것을 듣기 위해 귀를 닫고,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력과 청력을 잃은 남편과 척추장애를 가진 아내의 일상이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같은 장애가 우주의 소리, 즉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는 영찬 씨.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달팽이의 별> 

<어머니>(Mother, 2011 한국 | 다큐멘터리 | 101분 | 개봉 2012.04.05 태준식 감독) 상영 때는 아예 점심 시간을 잘라먹을 각오로 택시를 타고 후다닥 다녀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이 작품 역시 일반 개봉관에선 만나지 못하고 부산 가톨릭센터 내에 위치한 예술영화전용관 아트씨어터 C+C에서 하루 한 차례 상영해 궁여지책으로 시간을 맞춘 거였다.    ▶[느낌] 생각처럼 무겁지도 않았고,눈물도 쏟아지지 않았지만 가슴 먹먹한 영화였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열사의 어머니로 40여 년을 살아낸,억척의 어머니가 보여준 소소한 일상의 힘은 ’역시 어머니란 존재는 위대하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 

<어머니> 

세 편 모두 관객 숫자는 대략난감한 수준이었다. 배급사 입장에선 상영관을 잡지 못하면서 관객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겠지만 관객 숫자가 각각 10명을 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는 달랑 셋이서 영화를 보게 돼 극장주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악순환이었던 게다. 

그런데, 영화가 나빴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기존 상업영화들과 풀어낸 방식만 다를 뿐 감동 그 자체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각각 다른 세 편의 영화가 준 감동은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힘, 그 자체였다.

굳이 변영주 감독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성 영화관 혹은 독립영화관, 예술영화전용관 등 이름은 다르지만 공공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있어 이들을 더 쉽게,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