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박찬욱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 '박쥐'-불편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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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분. 영화가 끝나고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한동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휴-’하고 내쉬었다. 흔히 시사회가 끝나면 관례처럼 터져나오던 박수소리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영화 ’박쥐’(박찬욱 감독/2009년)는 파격적이었다. 

 블랙코미디와 공포, 멜로를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섬뜩하리만치 정교한 적·청·백색의 영상이 빚어낸 강렬한 이미지, 성스럽거나 혹은 세속적인 음악, 인간의 원죄와 구원, 욕망과 사랑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패러독스(역설)를 잃지않은 극 전개가 기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과연 ’박찬욱에 의한’ 혹은 ’송강호를 위한’ 웰메이드 영화 한 편을 탄생시켰다는 데는 큰 의문을 품지않았다. 

 다만, 그 ’불편한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관객들과 소통될 수 있을 것인가에선 의문 부호를 달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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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신부 상현(송강호 분)이 ’이브’로 불리는 질병치료를 위한 외국의 백신실험에 극비리에 참여했다가 죽음에 다다르나 잘못된 수혈로 뱀파이어로 되살아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이후 상현은 ’이브’의 영향으로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이 다시 썩게 되고, 피를 계속 마셔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신부라는 직업상 사람을 죽일 수 없어 고뇌에 빠진다. 게다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욕망에도 눈을 뜨게 된다. 그때 상현은 어린시절 친구 강호(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태주의 남편을 죽이게 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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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다. 송강호의 천연덕스러움은 물론이고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김옥빈, 그리고 신하균의 능글맞음과 김해숙의 눈짓연기와 긴장감 조성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연기자가 창조한 인물들은 모두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박찬욱 사단’으로 불리는 최고의 스태프들이 만들어냈다는 탐미주의적 영상은 또 어떤가. 하얗게 도배된, 불빛으로 가득한 나여사(김해숙) 집 세트는 지금도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으며, 아침해가 뜨면서 마침내 한줌 재로 사라지고 말지만 벼랑 위 폐차 직전의 차 위에 두 남녀가 고립된 존재로 앉아있는 모습, 그리고 피리를 타고 흘러넘치는 선홍색의 피와 각혈의 섬뜩함 등등. 특히 태주와 상현이 서로 탐닉하듯 동시에 피를 빨아먹는 장면은 압권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개봉에 앞서 일찌감치 화제가 된 송강호(상현)의 노출씬은 생각 밖으로 충격이 덜했다. 상현을 메시아로 여겨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성폭행이라는 치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환상 속에서 불러내는 한편 자신도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장면으로 읽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날 시사회에 맞춰 시네마떼끄 부산을 찾은 박찬욱 감독은 "다소 거북한 장면도 있고 점잖은 분들이 보기에 이 영화가 적당한지 모르겠다"면서도 "성직자에게도 유혹, 갈등, 고뇌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예술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줄 것"을 당부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 영화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영어 제목은 ’Thirst’(갈증). 칸에서도 한국 상영 버전 그대로 상영될 예정이란다. 영어 제목 ’갈증’은 살아있음이, 사랑한다는 것이, 욕망에 치를 떤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더욱이 사랑이라는 지독한 감정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주인공 남녀의 그릇된 욕망과 절망조차도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아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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